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다사자 작전 (문단 편집) === 나치 독일 해군 === 바다사자 작전 전반에 걸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난국 그 자체였다. 그 이유는 애초부터 나치 독일 해군의 전력 자체가 미약한데다가 노르웨이 침공으로 그나마 있던 전력의 상당수를 날려먹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 해군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면 1940년에 들어서야 [[크릭스마리네]]는 [[샤른호르스트급 전함]]과 아직 취역이 완료되지 않은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합쳐서 간신히 [[전함]] 4척을 보유하였고 [[순양함]]의 경우에는 [[경순양함]]과 [[중순양함]]을 모두 합쳐도 고작 8척에 불과하였으며 구성도 [[엠덴급 경순양함]] 1척, [[쾨니히스베르크급 경순양함]] 1척,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2척,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2척,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2척에 불과하였다. 항공모함은 아예 한 척도 없었다. [[도이칠란트급 전함|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슐레지엔과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하노버]]도 있긴 하지만, 이 3척은 1940년대에 들어서 사실상 전력외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노르웨이 침공]] 때 수상 함대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바다사자 작전이 계속 연기중이던 1941년 5월에는 그나마 없던 전함 4척중 하나인 [[비스마르크(전함)|비스마르크]]가 [[비스마르크 추격전|격침]]당해버리는 등 손실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비스마르크급 전함 2척이 취역해서 전투가 가능해지는 시점까지 바다사자 작전을 연기하려고 했지만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11인치급 주포 탑재 2척과 15인치급 주포 탑재 전함 2척을 합쳐서 전함 4척과 약간의 호위함만 가지고 영국 해군의 주력인 본토함대를 상대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수가 작렬했다. U보트는 기본적으로 통상파괴전용이지 정규 해전용이 아니었고 이미 노르웨이 침공시에 이런 사실이 입증된 상황이었다. 항복한 프랑스 해군의 군함을 편입해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미 영국이 [[캐터펄트 작전]]에서 쓸만한 프랑스 군함을 박살내거나 파손한 후였고 비시 프랑스군을 바다사자 작전에 동원할 수도 없었으며 타국의 군함을 편입해서 전투에서 제대로 사용할 정도로 만들려면 시간과 노력과 자재가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당시의 나치 독일은 그러한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비시 프랑스군은 자국의 현역 군함들을 나치 독일이 압수하려고 하면 차라리 자침시킬 계획과 준비를 해놓은 상황이었고 [[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으로 현실화된다. [[이탈리아 왕립 해군]]을 바다사자 작전에 참여시키는 안도 있었으나 영국 해군이 지키고 있는 [[지브롤터 해협]]을 돌파하는 것부터 난관이었고 이탈리아 해군은 특성상 지중해 안에서만 활동하는 것을 고려해서 항속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데다가 [[베니토 무솔리니]]가 즉흥적으로 개전한 덕분에 이탈리아 해군은 연료보유량도 부족한 상태에서 무솔리니가 벌여놓은 전쟁을 지원하느라고 지중해를 떠날 입장도 아니므로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치 독일의 내부에서도 나치 독일 해군이 바다사자 작전 개시를 할 경우에 영국 해군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며 그로 인해 상륙작전에 치명적인 위험이 초래될 것이라고 다들 예상하는 분위기였으며 단지 말로 내뱉지 못하는 경우에 불과하였다. 대표적으로 1940년 8월 13일 국방군최고사령부의 알프레트 요들이 보고서에서 이런 내용을 거론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